16 감열 - 소각

2025 Installation /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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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열 - 소각 : 언어의 화장터에서 당신의 말을 떠나보내는 법

이곳은 당신의 디지털 언어가 잠시 머물다 영원히 사라지는 정거장입니다. 차가운 화면 속에서 부유하던 당신의 기억, 감정, 그리고 닿지 못한 고백들을 불러내어, 가장 뜨겁고 허무한 방식으로 소멸시키는 의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다음의 순서에 따라 당신의 언어를 떠나보내시길 바랍니다.

  1. 기록과 해체 (The Writing & Deconstruction)
    오른편에 놓인 키보드 앞에 앉으세요.
    지금 당신의 마음속을 맴돌고 있지만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문장들, 혹은 너무 가볍게 소비되고 사라져 버린 디지털 파편들을 입력해 봅니다.
    문장을 완성하고 엔터(Enter) 키를 누르십시오. 그 순간, 당신의 견고했던 문장은 해체되어 화면 속 어두운 심연으로 흩어집니다. 아직은 인쇄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저 디지털 유령처럼 화면 속을 하염없이 부유할 뿐입니다.
  2. 숨결과 흐름 (The Breath & Flow)
    이제 저 차가운 화면 속에 갇혀 떠도는 단어들에게 마지막 생명력을 불어넣을 차례입니다.
    키보드 옆에 놓인 마이크에 가까이 다가가세요. 화면에 떠 있는 당신의 단어들을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읽어보거나, 깊은 숨을 ("스읍..." 하고) 불어넣어 보세요.
    당신의 숨결이 닿는 순간, 죽어있던 글자들이 바들바들 떨며 반응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물에 풀린 잉크처럼, 혹은 바람에 날리는 연기처럼 서서히 왼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3. 물질화 (Materialization)
    당신의 숨결에 떠밀려 화면 왼쪽 끝으로 사라지는 단어들을 눈으로 쫓으십시오.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넘어 현실로 넘어오는 그 순간, 왼편에 놓인 검은색 프린터가 침묵을 깨고 작동합니다. 징- 하는 기계음과 함께, 당신이 숨을 불어 떠나보낸 바로 그 언어들이 얇고 하얀 영수증 종이 위에 뜨겁게 새겨져 세상 밖으로 출력됩니다.
  4. 소각의 의식 (The Ritual of Incineration)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프린터에서 출력된 당신의 '감열(Thermal)된 언어'는 곧바로 아래 놓인 빈 어항 속으로 떨어집니다.
    그곳에는 붉고 뜨거운 열기(적외선 램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리 너머로 당신의 언어가 치르는 화장식을 지켜보세요.
    열에 의해 기록되었던 당신의 말들이, 더 거대한 열을 만나 다시 감열되며 스스로를 태워가는 과정을 목격하십시오. 하얗던 종이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리고, 그을리고, 이내 새카맣게 변해 재가 되어가는 모습은 우리의 기억이 망각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닮아있습니다.
    수조 바닥에 쌓인 검은 잔해들. 그것이 당신의 뜨거웠던 말들이 남긴 마지막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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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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